2025년 가을, 중국의 국경절 황금연휴를 맞아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일명 '유커')들이 대거 귀환하면서 서울 명동과 주요 상권이 다시 한 번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 몇 년간 팬데믹 여파로 인해 발길이 끊겼던 외국인 관광객들, 특히 대규모 소비력을 지닌 중국인 유커들의 귀환은 유통업계를 비롯한 관광·서비스 산업 전반에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불러오고 있다.
■ 명동에 몰려든 유커, 거리마다 '북적북적'
명동은 예로부터 유커들의 '성지'로 불리던 곳이다. 화장품, 패션, 명품 브랜드 매장은 물론, 길거리 음식과 전통 기념품 상점들이 몰려 있는 명동은 한때 한국 내 외국인 소비의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핵심적인 쇼핑 관광지였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2020년부터는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기며 상점들의 절반 이상이 문을 닫는 등 쇠퇴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2023년 말부터 시작된 중국의 해외여행 완화 조치, 그리고 항공편 확대와 함께 2025년 국경절 황금연휴를 맞은 중국인들이 대거 한국으로 몰리면서, 명동은 다시금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특히 이번 연휴 기간에는 약 20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 관광객이 한국을 찾은 것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유커들의 귀환에 상인들은 오랜만에 활짝 웃고 있다. 명동의 한 면세점 관계자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버스를 타고 매장 앞에 도착하는 장면이 정말 오랜만이다”라며 “향수,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같은 인기 제품이 연일 품절되고 있다”고 밝혔다.
■ 유통업계 ‘유커 맞이’ 총력… 마케팅·할인·중국어 인력 재배치
유커들의 귀환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건 유통업계다. 특히 면세점, 백화점, 화장품 브랜드, 편의점, 프랜차이즈 식음료 업계는 그야말로 총력전에 돌입했다.
롯데, 신세계, 현대 등 주요 백화점들은 중국인 고객 전용 VIP 라운지를 다시 열고, 중국 SNS 채널(웨이보, 샤오홍슈 등)을 활용한 마케팅을 강화했다. 또한 중국어 가능 직원을 재배치하고, 결제 수단도 위챗페이, 알리페이 등 현지 결제 시스템을 적극 도입해 고객 편의성을 높이고 있다.
화장품 업계 역시 중국 소비자들의 수요에 맞춘 프로모션을 강화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주요 브랜드는 국경절 기간에 맞춰 인기 제품 1+1 행사, 구매금액별 사은품 제공, 면세점 연계 프로모션 등을 대대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또한, 명동 일대를 중심으로 편의점과 프랜차이즈 음식점들 역시 중국어 안내 표지판을 다시 설치하고, 인기 상품 재고를 확보하는 등 대응에 분주한 모습이다.
■ K-컬처·K-푸드와 결합된 새로운 소비 트렌드
이번 유커들의 귀환은 단순한 쇼핑 수요를 넘어서 K-컬처, K-푸드에 대한 관심과 결합된 복합적인 소비 트렌드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중국 내에서 한국 드라마, K-팝, 뷰티 콘텐츠가 다시 인기를 얻고 있는 가운데, 유커들은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데서 나아가 ‘경험’과 ‘콘텐츠’를 소비하고자 한다.
예컨대, 명동에서는 K-드라마 속 촬영지를 체험할 수 있는 포토존과 팬 굿즈 팝업스토어가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한국 유명 유튜버와 협업한 뷰티 클래스나 쿠킹 클래스도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또한, 전통적인 인스턴트 라면이나 김치 같은 식품 외에도 한식 밀키트, K-디저트, 퓨전 분식류 등이 유커들의 쇼핑 리스트에 올라 있으며, 편의점에서는 한국 연예인이 모델로 활동하는 한정판 음료와 스낵류가 조기 품절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 관광업계·정부, 인프라 개선과 지속 유치 전략 필요
하지만 단기적인 호황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유커들의 귀환은 분명 긍정적이지만, 지속적인 유치를 위해서는 한국 관광의 매력을 장기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국과의 외교적 상황, 한한령 완화 여부, 한국 내 서비스 인프라 개선 등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관광이 단기 쇼핑 중심에서 벗어나 체류형 관광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관광지의 접근성, 다국어 안내, 교통 편의성, 숙박시설 다양화, 환율 정책, 세금 환급 시스템의 효율성 등 외국인 관광객들이 실제로 체감하는 편의성을 높이는 것이 필수라는 것이다.
정부 역시 관광공사를 중심으로 중국 주요 도시에서 한국 관광 로드쇼, B2B 미팅, 인플루언서 초청 프로그램 등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단체 관광뿐만 아니라 개별 관광객(FIT: Free Independent Traveler) 유치를 위한 디지털 플랫폼 개선, 예약 시스템의 글로벌화, 관광 콘텐츠 현지화가 요구되고 있다.
중국의 긴 연휴를 맞아 돌아온 유커들 덕분에 명동은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고, 유통업계는 이를 기회로 삼아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반짝 특수에 머무르지 않고, 지속 가능한 관광과 소비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민관의 협력이 절실하다. K-컬처의 인기를 기반으로, 서비스 품질과 관광 경험의 질을 함께 높인다면, 한국은 다시금 아시아 최고 관광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